오늘의 죽을 뻔 한 이야기

(이제는 연간도 아니고.. 격년간 업데이트 블로그가 되어버린 이 곳을 위해 잠시 묵념(…))

진공청소기가 얼마 전 부터 전원을 넣어도 켜졌다말았다 하길래, 전원스위치가 왠지 헐거운 느낌이 들어 접점부분이 눌리던가 해서 접촉불량 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접점부분을 지지하는 탄력이 있는 부분이 부러지던가 해서 제대로 접촉이 안 되는게 아닌가 하는거지. 실제로 옆으로 돌려서 들면 되는데 바로 세우면 안되고 하는 증상은 이러한 추측을 더욱 확고히 하게 하였으며, 기왕 이렇게 된 거 청기와로 돌진한다!..가 아니라 까서 확인을 해 보는 것이 엔지니어로서 훌륭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라고 스스로를 대견해 하며 분해하려고 보니,

본체 나사 다섯 개 중에 두 개의 머리가.. 십자도 일자도 아닌 – – 자 형(1자 홈 가운데 부분이 메꿔진 형태)인 것이라.

일자 드라이버 가운데를 갈아내어 써야 하나 어쩌나 고민만 하며 귀차니즘과 게으르니즘의 합공에 말려 몇 주(몇 달 인거 같기도 하다..) 미루다가, 마침 용산에 들른 김에 공구점으로 뛰어들어 “일자드라이버 비슷한데 가운데 홈 파진 드라이버 없나여?” / “ㅇㅇ 이거임 크기 고르셈.” / “오오!” 그래서 제일 큰 사이즈는 혹시나 너무 클까 싶어서 한 사이즈 아래 걸 사 갖고 왔는데.. 집에 와서 청소기 나사홈에 넣고 돌리자마자 뚝-_-하고 팁이 부러지더라. 이게 한 삼 주 전? 이야기.

그리고 그 이후로 다시 이런저런 사정(…)에 밀려 용산행을 미루다가.. 시간이 흘러흘러 계절이 바뀌며 날씨가 풀리고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건 내 알 바 아닌데 나방파리도 돌아다니기 시작하네?!?

이 집의 유일한..아니 싸니까 여러가지 단점이 있는데 그래도 이 보증금에 방 두개짜릴 어디가서 구하겠냐며..그런 관점에서는 장점이 여러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지만, 그래도 용서할 수 없는 단점은 바로 겨울이 아닌 계절에는 나방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는 거.

나방파리를 사전에 박멸할 길을 몇 가지 시도해 보았으나 대부분 방법이 보이는 수를 상당히 줄일 수 있을 뿐 완전히 없앨 수는 없더라. 나는 돈이 없으니 현실과 빠른 타협을 진행하였고, 그 결과 보이는 나방파리를 보이는 족족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여 잡는 방법을 선택하게 됨.

사정이 그러한데 겨울을 벗어나는 이 마당에 진공청소기가 이 모냥이니.. 귀차니즘은 용서해도 나방파리 돌아다니는 꼴은 용서할 수 없다며 갑자기 빡이 돌아 용산으로 튀어간다. ‘저녁시간이긴 하지만 어째저째 아직 문 열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도착해보니 문 닫음. 그것도 저번에 그 드라이버 산 데만 닫고 옆에 다른 공구점 두어군데는 아직 안 닫았던데, 다른 곳에는 한 군데도 그 드라이버가 없더라. 울면서(그날 바람이 심해 맞바람 맞으며 걸으니까 눈물 좀 났음) 500m 정도를 걸어 언젠가 가 보려던 용문시장 동네 빵집엘 들러 빵을 사고, 오는 길에 을밀대에 들러 냉면으로 저녁을 해결. 이게 지난 주 얘기.

오늘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용산의 그 공구점에서 가장 큰 사이즈의 – – 자 형 드라이버를 사서는(혹시 안 맞거나 지난 번 처럼 또 부러지면 일자드라이버 가운데 갈아내서 쓰려고 만능톱도 샀다), 집에 와 청소기를 분해해본다.

먼지보소.

분해하면서 구석구석에 보이는 먼지들 좀 떨어내 주고,

대망의 전원스위치 부분. 근데 접점부분이 바로 노출된 형태가 아니라 박스형 케이싱에 닫혀 있는 구조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납땜한걸 녹이지 않고 위쪽 케이싱 걸쇠만 잘 벗기면 열 수 있는지라 조심스레 열어보니, 이놈도 안쪽에도 먼지가 가득. ‘하하. 요놈의 먼지들 덕분에 접촉불량이 일어났나보군?’

먼지도 떨고, 접점 부품도 빼내서 빡빡 닦아주고(먼지랑 윤활제같은거 짬뽕인지 하여튼 시커먼게 막 닦여나옴. 이 때만 해도 이거다 싶었다), 혹시나 해서 접접부분들 접촉잘되게 밀어주는 스프링도 꺼내서 살짝 늘려서 탄성 좀 높여주고, 그러다가 그 쪼그만 스프링을 세 번인가 놓쳐서 찾는데 안 보여 쌍욕도 하고. 여튼 이래저래 열심히 떨어내고 닦고 한 다음 재조립. 전원을 넣어보니 잘 된다 싶..다가 다시 금방 같은 증상 발생. 이 산이 아닌가베?

아 뭐지.. 다시 분해해봐야하나.. 걍 싸구려 청소기 수명 다 된거라 치고 다이슨(…)청소기나 알아봐야되나.. 돈 없는데 추석상여금 나오면 그걸로나 어떻게 해 볼수 있을까 그 전엔 무리.. 등등등 오만 생각을 다 하다가 증상은 접촉불량인거 같은데 스위치가 아닌가보다! 좀 더 본격적으로 분해해보자! 는 생각에 이른다. 좀 전에는 완전히 다 열어본 건 아니고 전원스위치부분만 꺼내서 까 본 거였거든.

자 2차 분해 들어갑니다. 다시 전원 플러그 뽑고(이게 중요함.. 오늘 죽을 뻔한게 이거때문이거든) 나사 풀고 본체 커버도 완전히 들어내고, 모터뭉치부분도 들어내서 다시 분해하고, 모터부분도 분해..하다보니 아까는 못 열어본 부분 구석구석에 먼지가 천지삐까리네. 게다가 배기통로부분에 먼지필터같은 게 있는데, 여기에도 먼지가.. 그 뭐냐, 먼지가 너무 꽉차서 고밀도로 압축되어 마치 부직포같은 질감이 되어버린-_- 그런 부분이 등장. ‘얘가 바람 나가는 걸 막아서 접촉불량이 났나? 그럴 리가..’ 라면서도 어쨌든 연 김에 다 청소하자 싶어서 탈탈탈 털고 다 털고 완전히 털고, 전임 GK 못 털어서 아쉬웠던 부분을 여기서 다 해소하려는 듯 털어버린 다음, 다시 조립을 하는데..

하는데, 어라?

전원스위치쪽으로 이어진 선 중에 하나가 심하게 눌려 있는 걸 발견함. 잡았다 요놈! 네놈이 원흉이구나. 선이 심하게 눌려 끊어질락말락하면 충분히 접촉불량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 증상이랑 일치도 하고. 그래서 이땐 얜줄 알았어요.(아니었음)

어쨌거나 발견한 놈은 잡아야지. 처치에 들어간다. 인두랑 납을 꺼내고 작업용 접이상도 꺼내서 세팅하고 인두를 전원에 물린다. 전선 눌린 부분을 절단하고 피복을 양쪽 5mm정도 길이만큼 벗겨낸 다음 납땜 들어가기 전에 잊지 말고 수축튜브를 잘라 전선 한 쪽에 끼워 저으기 안쪽으로 밀어넣어둔다. 이제 본격 납질! 납을 조금 녹인 다음 이걸 전선 끝에 발라주고, 반대쪽 전선 끝에도 납을 발라주고. 작업은 혼자 하고 나는 손이 세 개가 아니니까 전선 한 쪽은 작업대 바닥에 테이프로 붙여 준 다음 나머지 전선 한 쪽과 인두를 각각의 손에 할당하고, 전선의 납이 묻은 부분끼리 맞댄 다음 인두로 마무리. 음 좋다. 납땜질은(전문가 수준엔 한참 못미치지만) 적어도 이제 써먹을만큼은 늘었구나 싶어 혼자서 잠시 만족 5초 정도. 한 쪽으로 밀어 둔 수축튜브를 납땜한 부분을 덮도록 옮긴 다음 라이터..를 켜니까 아놔 이놈 가스 다 나갔네. 어떻게 해야되나 고민하다가 얼마전에 찾은 케익 초 불 붙일때 쓰는 대형 성냥 모양 라이터를 구석에서 찾아 낸 걸 기억하고 갖고와보니.. 이놈도 가스가 다 됐는지 불이 비실비실..켜서 잠깐 지지고 꺼지면 다시 켜고 반복을 수십차례 해서 어찌어찌 수축튜브질도 마무리. 아 힘들었다! 하지만 재조립이 남았지..

어쨌거나 이번엔 성공적일거야! 를 되뇌며 조립완료! 전원인가! 위이잉 소리가 훨씬 커진 느낌(막힌 먼지 다 떨어냈으니까) 근데 또!!! 증상이 다시 발생!

다이슨을 한 5분 정도 그리워하는 시간을 다시 가진 다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인 즉슨,

청소기를 들어올리다가 전원코드를 밟아먹거나 하면서 ‘아 이거 전원선 끊어지면 어떡하지?’ 라고 몇 번이나 걱정했었다..라는 거-_-

떨리는 마음으로 청소기를 다시 들고, 전원선이 본체랑 만나는 부분 근처를 붙잡은 다음 전원을 넣고, 전원선을 움직여보니 전원이 들어왔다가, 다시 전원선을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니 꺼졌다가, 또다시 아까 방향으으로 움지이니 켜졌다가 아 ㅅㅂ 유레카!!!

흥분된 마음으로 다시 세 번째 본체 분해를 시작합니다. 본체 열고 모터뭉치 덜어내고, 전원기판쪽을 만지작거리며 ‘이거 단선된 부분은 전원선이 본체로 들어오는 부분 근처인거 같은데, 어느부분을 얼만큼 잘라야 잘 잘랐다고 소문이날까’ 쯤을 생각하는 찰나,

찌리릿~

우허허허헉?!??! 인지 뭔지 하여튼 괴성을 내뱉으며 손에 들고 있던 걸 던져버리고 보니,

청소기가 순간적으로 돌아가다가 멈추고 있고,

전원플러그는 전원콘센트에 연결되어 있고

전원플러그는 전원콘센트에 연결되어 있고

전원플러그는 전원콘센트에 연결되어 있고

ㅇㅇ 맞음. 이번엔 정말 확실하다 싶어서 흥분한 나머지 분해하기 전에 전원플러그 뽑는 걸 깜빡했네요??

스스로에게 쌍욕을 하며 전원플러그부터 냅다 뽑고,

작업재개-_-

아까와 같은 요령으로 이번엔 전원선 두 가닥을 전부 자른 다음 납땜하고 수축튜브질. 납땜질은 반복학습주기에 딱 들어맞을 때에 다시 실습-_-에 들어가서 그런지 좀 전 보다 훨씬 이쁘게 완성됨. 여기서 다시 뿌듯뿌듯 해 하면서, 얼마전에 냉장고 도어 경첩부분 깨진거 케이블타이로 수리해낸걸 떠올리며 주말에 재활용센터 수리 알바나 뛸까 이런 뻘생각도 잠시 하고(…). 근데 수축튜브 지지려고 보니 라이터 가스는 다 떨어지고, 밖에 나가기는 귀찮고..아 어째야되나 하다가 결국 제과점 케익칼이랑 같이 처박아둔 생일초 불 붙이는 길쭉한 성냥(아까 얘기한 성냥형 라이터 말고 진짜 성냥)이 생각나서 찾아보니 있다. 이거 써야지. 잘 되네-_- 근데 두 번 하고싶지는 않다. 라이터 하나 사 두고.. 성냥형 라이터 저거는 가스 채워야 할텐데 가스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세 번째 조립에 들어감. 이쯤되니 조립도 무슨 게임 스피드런 뛰는 거 같더라-_- 금새 조립해낸 다음 전원 연결 먼지통부착 등등등 전원인가! 잘 된다! 요리조리 돌려봐도 꺼지지 않고 잘 된다 끼얏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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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기쁘기도 하겠다 드라이버며 사느라 들인 돈에 용산 몇 번 왔다갔다하느라 들어간 시간에 한 번 죽을뻔도 했는데.

근데 다 해놓고 뿌듯해 하는 걸 보면 이런 짓 하는 게 천성이다 싶기는 함ㅋ

7 thoughts on “오늘의 죽을 뻔 한 이야기”

  1. 영문으로 댓글스팸 다는 봇새끼들 막으려면 어떻게해야할까.. 댓글 달 때 CAPTCHA 넣는 플러그인 같은 거 없나. 잠깐 뒤져보니 공식?플러그인은 없는 거 같은데.

  2. 백만년만의 포스팅을 환영해주는 양키봇들….
    내가 용산을 두 번 다녀온 듯한 귀차니즘이 전이된다. (….)
    모쪼록 살아남아서 다행이다. 그래야 다음에는 볼 수 있겠지 <-

    1. 역시 누나는 쉽게 뵐 수 있는 분이 아니근영! 그나저나 간만에 어려운걸음 해 주셨는데 양키봇시키들때문에 이런 실례를 흑흑. 뭐 털 거 있다고 하루에도 몇십개씩 이런 돈도 안 되는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대는지;;

    2. 텍큐가 거의 개발중단에 가까운 상태라서 플러그인을 기대하긴 힘든 것 같다.
      내 블로그에도 지난주까지 매일 130힛씩 찍히다가 드디어 40이 되었지.
      어차피 오는데서만 오니까 ip랑 닉네임 차단을 하면 어느정도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삭제하기전에 ip와 닉네임을 블럭합시다.

    3. 재방까지 해 주셨는데 이런 꼴사나운 모습이라니! 게으른 저를 매우 쳐 주십셩(…)

      근데 막상 블록하려고 보니 이눔들 닉네임이랑 ip도 매우 다양하게-_- 쓰더라구요. 댓글이 수백개가 달렸는데 중복되는 아이피가 하나도 없는 사태가-_-;; 분명 ip변조해서 다는 것들이겠지만 여튼 오늘도 미련하게 수동삭제를 하고 아쉬운대로 댓글 플러그인 다른 걸 하나 설정해놨는데 얘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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